금계뜰마을(부창리)정보

강원도 공근면 부창리

이장  이기동(63세)
(HP)010-8878-3585
☎(033)342-3585

새마을지도자 조병길(54세)
(HP)010-3590-3850

부녀회장  원용애(62세)
(HP)010-7255-1067

노인회장 유래희(70세)
(HP)010-5367-9578

인 구 수 (명)
계 238명   (남126, 여112)

연령별 인구수
19세이하   남(%)  15(71.4)  여(%)  6(28.6)
 20~40세   남(%)   24(61.5) 여(%) 15(38.5)
 41~64세   남(%)   49(47.6) 여(%) 54(52.4)
 65세이상  남(%)   38(50.7) 여(%) 37(49.3

가 구 수
계115
농가 (%)  81(70.4)
어가 (%)    0
기타 (%)   34(29.6)


가구별 현황
계  59
독거인(%)    5(8.5)
장애인(%)  15(25.4)
기초수급(%) 5(8.5)
차상위(%)     1(1.7)
다문화(%)     3(5.1)
귀농귀촌(%)30(50.8)


면적(㎢)
총면적    7.973
전           0.687
답           0.801
임야        5.853
대            0.08
기타         0.552

부창리(富蒼里) 지명 유래 
토골(土洞) 아래쪽이 되므로 아래토골 또는 하토동(下土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샛말, 삼군리, 용바우, 배기벌을 병합하여 하토동리(下土洞里)라 하였다가, 
그 후에 백이벌에서 쌀이 많이 생산되어 부자마을이 되었다고 하여 부창이라 하였다.

관심산(觀尋山) 
 안삼군리에 있는 산으로, 임진왜란 때 관군과 의병이 
왜군의 동향을 살피며 훈련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끌썰매골 
학골 안에 있는 골짜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골이 가파른 관계로 
나무를 해서 내려올 때는 지게를 끌고 내려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러 명이 함께 내려올 경우는 지게를 끈으로 이어서 한 사람은 앞에서 끌고 
나머지 사람들은 나무지게에 올라앉아서 내려왔다고 한다.

백이벌 
부창리 1반에 속하는 마을로, 들이 넓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이평(百二坪)’이라고도 한다.
   
불탄터 
백이벌에 있는 터로, 예전에 불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병기 댁 앞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이 못을 메우면 큰 화재가 난다고 한다. 예전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삼군리 
부창리 6반에 속하는 마을로, 임진왜란 때 관군, 의병군, 왜군 등 3군이 
격전을 벌이던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삼군리, 바깥삼군리, 새이삼군리가 있다.

 샛말 
 부창리 5반에 속하는 마을로, 마을이 사이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양짓말 
부창리 4반에 속하는 마을로, 양지쪽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바우 
부창리 2반에 속하는 마을로, 마을 앞 냇가에 용의 머리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유래는 마을 앞 냇가에서 큰 구렁이가 용이 되어 승천하려고 하는데
 사람의 눈에 띄어 용바위에 떨어졌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응달말 
부창리 5반에 속하는 마을로, 응달쪽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세봉
 안삼군리에 있는 산으로, 천지개벽 때 산이 물에 잠기고 세 자 만큼 남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종잘바우 
 부창리와 삼배리 경계에 있는 바위로,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 바위를 지나며 “아무도 없겠지!” 하며 종잘종잘 걸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학골 
부창리 3반에 속하는 마을로, 마을 뒤에 있는 산의 모양이 학이 내려앉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유래는 마을이 처음 개척될 때 이 골에서 학이 세 마리 날아갔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학골 양쪽에는 각각 공자무골과 물안골이 있다.
 
행상고개 
새이삼군리에 있는 고개로, 이 고개로 상여가 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창리 본부락와 통한다.